
l 삶의 수수께끼 l
젠야타X메이
피에르
“잠꾸러기 여러분, 어서 일어나요~.”
졸린 눈을 비비며 동면 캡슐을 지나친다.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기도 하면서 그들을 지나친다. 이곳의 장소는 남극기지. 지구의 오늘을 관측함으로 지구의 내일을 예측하는 사명을 가진 이들이 모인 장소이다.
주변은 언제나 푸른 어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지나친 고요함을 담은 곳이지만 기지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사람을 마르게 할 건조함을 가진 차가운 바람이 살벌하게 부는 곳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영원히 고립될 수 있는 장소에서 오직 과학자로써의 사명감을 가지고 자원해서 이곳에 온 여성 과학자는 앞으로 있을 일도 모른 채 졸린 눈으로 발이 시리지 않게 두꺼운 실내화를 신고 양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이~ 일찍 일어났네?”
노란 조명 바깥에 서있는 남성이 그녀를 친숙하게 불렀다. 메이는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오파라 대장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메이는 양칫물을 뱉고 입가를 닦았다. 손에는 물을 담은 머그컵. 조금이라도 물자가 아쉬운 이곳에는 절약이 곧 생명이었다.
“그래, 바깥의 눈보라가 아직도 심해. 여기서 나가긴 힘들겠어.”
화장실의 노란 조명은 그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남극 기지의 대장은 그 답지 못하게 약한 소리를 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떠한 유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그래요? 그래도 걱정 말아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 오버워치가 구해주러 오겠죠.”
메이는 칫솔을 꽂으며 그들을 언급했다. UN산하의 국제적인 다목적 최정예 특수부대원들. 군인, 과학자, 로봇, 모험가로 구성된 그 집단은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특히 그 고릴라 과학자를 만났을 때 메이는, 그의 크기에 한 번 놀랐지만 다음에는 그의 단정함과 명석함에 놀라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들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듬직함이 느껴지는 이들이다.
“아니, 그들은 오지 않아. 너도 알고 있잖아?”
오파라 대장이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마치 목소리에서 극지방의 거센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얼굴은 짙고 푸른 어둠에 가려져 있었고 몸통만이 노란 불빛 아래로 노출되어 있었다.
“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메이가 불안감에 휩싸여 그렇게 물었다. 등이 저절로 움츠러들고 손에 쥔 컵에 부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남극 기지의 튼튼한 철벽도 그녀 주위에 부는 불안한 기운을 막아주진 못했다.
오파라가 한 걸음 내딛자 발밑으로 깨진 유리조각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한 발짝 움직여 밝은 빛 안으로 들어오자 마주치고 싶었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덧칠되어 드러났다.
“우린 모두 죽었거든.”
메이의 손에서 머그컵이 떨어진다. 숨이 멎은 순간에 떨어져 깨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밝은 빛 아래에서 본 것은 삐쩍 마른 망자의 얼굴이었다.
“아아아아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에서 떨어지듯 침대에서 일어나 버렸다. 거친 숨을 내쉬며 커다래진 눈으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더듬어 본다. 여전히 평소와 같이 그대로 있는 차신의 침대와 이불. 조금 헝클어졌다는 것만 빼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일상 속의 모습이었다.
“아아...... 하아......”
격하게 뛰고 있던 심장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 메이의 시야에는 조금씩 어둡던 꿈속의 풍경이 사라지고 현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 서서히 사라져갈 즈음에 자신의 옆구리고 툭 하고 들어온 둥근 물체에 눈길이 갔다.
“그래 설구야. 난 괜찮아......”
자신이 비명을 지르니까 그녀의 애완 로봇이 한 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설구는 이모티콘으로 밖에 안 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메이는 그런 설구가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 기지개를 키면서 악몽을 털어낼 긴 하품을 했다. 그리고 일부러 더욱 씩씩한 동작을 보이며 이불을 걷고 세수하러 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 될 거야! 무려 오버워치에서 연말 파티에 나를 초대했잖아?”
그녀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몸을 틀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찾게 되는 자신의 실내화. 하지만 그녀가 실내화의 푹신한 안감에 발을 얹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방금 전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순간.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 기지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시작된 근사한 밤. 메이는 자기에게 과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예쁜 옷을 입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도착해보니 레나님도 있고 앙겔라님도 이미 그곳에 계셨다.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이 와서 자리를 빛내 주었는데 메이는 오직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헉, 저분 D.Va님 아냐?? 나중에 사인 받아야지! 저기엔 윈스턴도 있네!’
메이는 근사한 옷을 입어서 그런지 연말 파티장 사이를 걷는 게 꼭 할리우드의 명예의 거리를 걷는 것만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대단한 면면들이 보이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자신이 직접 걸어 들어간 기분. 고개를 돌려보아도 보이는 것은 영웅이나 혹은 전설적인 인물들에, 개중에는 아닌 사람도 있는 거 같긴 했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 모두가 여기에서 한 해를 가치 있게 보냈음에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난......’
뛰어난 기후학자는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이 장엄한 세상 속에서 혼자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해주는 이인데 자신은 고작 혼자 살아남은 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마저도 들었다. 가끔씩은 하면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서리를 내리게 하는 폭풍보다 차가운 의심이 가슴 안쪽부터 그녀를 좀먹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때 그곳에서......’
순간 검은 가죽만 남은 망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이 있어야 할 구멍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음에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존재. 한때 가장 믿음직했던 이가 남기고 간 자리는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이 자리까지 따라온 설구가 그녀가 우울해졌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녀가 잘못된 생각을 했을 때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 설구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녀는 억지로인지 모르겠지만 겨우 미소를 되찾았다. 그녀는 조금이나마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고자 연회장 구석에 마련된 바의 의자에 앉아보았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웬 수염이 텁수룩한 사람이 연거푸 술을 들이켜고 있어서 적당히 떨어져 앉자 바텐더가 조용히 다가와 그녀에게 주문을 받았다.
“주문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옴닉 바텐더이다. 듣자하니 이라크의 오아시스라는 곳에서는 이런 바텐더가 흔하다고 하는 거 같기도.
“어...... 녹차 있나요?”
“......네?”
메이는 딱히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닌지라 일단 어색하기도 하고 뭔갈 마시고 싶어서 바에 앉긴 했으나 딱히 뭘 주문해야 할지를 몰랐다.
옴닉 바텐더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접객을 하긴 했지만 아까는 웬 지저분해보이는 놈이 와서 화이트 플랫을 찾질 않나, 밀크티를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갖은 떼를 다 썼는데 이번에는 웬 녹차를 찾는 손님이 등장하다니. 바를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릴 걸 그랬다.
“녹차라... 내 제자가 마시던 게 떠오르는 군.”
메이의 곁에서 바텐더와는 다른 기계음이 들렸다. 다른 기계보다 한결 차분하고 온화한 음성. 표정을 알 수 없는 옴닉이라고 해도 그정도의 차이는 알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메이라고 해요.”
그녀는 일단 그와 통성명을 하기로 했다. 이곳은 오버워치의 연말파티이기도 하니 이 옴닉이 비범한 분이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겐 그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바로 샴발리의 수도사 중 하나였다.
“나는 젠야타라고 하오. 그리고 나는 그대가 누군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소.”
“네? 저를 아세요?”
메이가 놀라 반문했다. 설마하니 이곳에서 자기를 안다고 할 사람이 윈스턴 말고 또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가 사람은 아니지만?
“물론이오 메이. 사람들이 말하길 그대는 보기 드문 훌륭한 성품을 지닌 과학자라고 하고던데.”
“하하...... 그럴 리가요.”
소개 받은 훌륭한 과학자씨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은 겸손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 대목에서 겸손을 느끼기에는 애당초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의심이 느껴지는 군.”
옴닉 수도승은 모든 걸 꿰뚫어보는 눈동자처럼 그녀를 바라보았다. 메이는 그의 말에 움찔 거렸지만 곧 이 온화한 성인의 말에 긴장을 풀게 되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쁜 뜻은 없었으니. 내 말은 그대 안에 불안이 있는 거 같다는 말이었소.”
“아......”
메이가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마치 모든 사물을 올바로 볼 것만 같은 그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녹은 고드름처럼 부자연스럽게 뚝뚝 떨어지며 아래를 향하게 되었다. 곁에 있던 설구가 애써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까 싶어 괜히 옆에서 툭툭 건드리긴 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메이는 그만 떠오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상기하고 말았다. 만약 그가 자신의 내면의 불안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그녀가 눈꺼풀 안쪽으로 스치는 망자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뭔가 고민이라도 있소? 괜찮다면 소승에게 털어놓아 보시오.”
“어...... 그게......”
메이는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분명 녹차를 마시지 않은 탓이 아니었다. 메이는 벌써부터 한기가 느끼는지 불끈 쥔 주먹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이내 진정시키면서 마른침을 삼키며 토로하기 시작했다.
“악몽이 있어요. 사실 어느 부분은 악몽이라고 할 수 없는데 그 꿈에서는 자꾸만 저 혼자 살아남고 다 죽게 돼요.”
“......”
젠야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말에 경청했다. 메이는 비록 그의 눈동자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순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자신의 가슴 안쪽에 몇 십 개의 겹으로 둘러싼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결국 저는 탈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가끔씩은...... 그때 죽는 게 내 쪽이 됐어야......”
딱콩!
“아얏!”
메이의 정수리 위로 주먹 만한 쇠구슬이 떨어졌다. 평소라면 부조화의 구슬을 건데다가 헤드샷이니까 119.6의 데미지를 줬을 테지만 이번에는 살살 봐주면서 장난스럽게 떨어뜨린 거라 그 정도의 데미지는 나오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약 15정도?
“그런 말은 마시오. 죽어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젠야타는 어느새 꺼내둔 파괴의 구슬을 도로 회수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는 평소에 파괴의 구슬을 아끼면서 그것을 자신의 에너지를 담는 그릇으로만 사용하는데, 파괴의 구슬로 누군가를 직접 때리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메이는 살살 맞긴 했어도 아픈 정수리를 감싸며 눈물을 찔끔 짜버렸다. 옆에서는 설구가 웃는 표정을 하면서 들썩거렸는데 역시 이런 식으로라도 슬픈 생각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어떻소? 삶의 무게가 좀 느껴지시오?”
“네?”
“한 번 말해보시오.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구려.”
메이의 정수리에서 아픔이 사그라질 때쯤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아직 그녀의 눈가에는 이슬 한 방울이 마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훨씬 이성적으로 얘기할 기분이 들었다.
“어...... 굳이 말하자면...... 제가 살아있어도 되는지, 제가 정말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심각한 아이러니였다. 이 지킬 가치가 있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그녀가 정작 자신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다니. 사고가 여기까지 미친 옴닉 수도승은 다시 수납해놓았던 구슬들을 꺼내 놓으며 그녀가 알아야 할 의미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덜 파괴적인 방식으로.
“삶의 가치라......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소?”
그는 주먹만 한 구슬 두 개를 공중에 띄우면서 말했다. 메이는 그가 평소에 이런 힘으로 공중에 떠있다는 걸 듣긴 했지만 정작 눈으로 보니 확실히 이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신기하긴 했다.
“그대는 기후학자이니, 한 번 말해보시오. 만일 지구가 지금보다 태양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소?”
젠야타는 구슬 한 개는 그냥 띄우고 다른 하나에는 에너지를 둘러 그 구슬의 몸집을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러자 비율은 맞지 않더라도 태양과 지구를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간이 모형이 완성되었다.
“그야...... 지구에는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겠죠.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워지니까요.”
메이는 작은 구슬이 큰 구슬의 주변을 일정한 궤도에 따라 도는 것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지금 말하고 있는 그녀의 눈을 처음으로 지구본을 본 아이처럼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아주 잘 했소. 게다가 지구는 미묘한 각도로 기울어져서 돌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면적에 골고루 태양빛을 받을 수 있다오.”
옴닉 수도승의 설명에 따라 공중에 띄워진 구슬이 모습을 확확 바꾸며 움직인다. 메이의 입장에서는 이미 수많은 논문을 읽고 직접 관측도 했을 정도로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구의 자전 속도 또한 아주 적절한데, 만약 조금이라도 느리거나 빠르다면 대기의 대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네, 맞아요. 단순히 수증기가 올라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요.”
눈에 띄게 밝아진 여인의 목소리가 금속 표면을 튕기며 퍼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그림자 따윈 찾아볼 수 없고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눈의 순수함마저 담겨 있었다.
“그렇소. 그리고 지구는 거대한 자석일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는 언제나 철이 돌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의 자기장 안에서 태양풍 걱정 없이 안전히 살아갈 수 있다오.”
메이는 ‘태양풍’이라는 단어에서 오로라를 떠올렸다. 오직 지구 자기장이 모이는 극지방에서만 보일 수 있는 현상.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의 시스템들은 분명 우리에게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아주 좋은 것들이었다.
그 외에도 깨달음을 얻은 이의 가르침은 계속 되었다. 달이 어떻게 우리를 잡아주는지, 그 영원한 시인들의 벗은 우리를 어떻게 지켜주는지, 중력과 관성은 어떤 작용을 하는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은 지구를 얼마나 오랫동안 감싸줬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빠르고도 빠른 속도로 여행하고 있는지. 설명을 마치자 어느덧 그 두 탐구자의 주변에는 수십 개의 구슬들이 공중을 유영하고 있었다.
“정말로 재밌지 않소? 인류는 오랫동안 우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 궁금해왔다오. 하지만 정작 이 지구는 매일, 매년 회전하면서 우리에게 원자와 전자 모형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었지.”
“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이 세계는 정말 발견해야 할 것들로 가득해요.”
메이는 푸르게 빛나는 구체를 보며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지금의 인류는 21세기의 중반을 지나면서 기술의 발전을 눈부시도록 이루어냈지만 세상은 아직도 인간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은, 선물상자들을 가득 품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기억하시오. 이 지구가 그대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이 우주가 얼마나 당신이 살아있기를 바라는지. 그대는 모르겠지만 이 우주는 그대를 온 힘을 다해 지켜주고 있소. 당신은 이 아낌없는 자애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오.”
메이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삶의 가치라는 말이 그녀를 다시 한 번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불끈 쥔 주먹 안에는 한 줄기의 희망이 들어있었다.
“제가...... 정말로 그런 사람일까요?”
한때 눈보라가 몰아치던 그녀의 마음속의 바람이 다르게 분다. 그녀가 기계로 된 얼굴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있지도 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분명 차가운 칼바람이 불어야할 그녀의 심장은 어느덧 그의 말에 따라 고요를 체험하고 있었다.
“그대는 당연히 가치가 있는 사람이오. 그리고 난 그대가 어떤 인생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당신의 인생 중에는 분명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당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오.”
“......!”
그 말을 듣자 메이의 눈 깜빡임 안 쪽에 또 다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에 보인 것은 캡슐 속 가죽만 남은 모습이 아닌 생생한 살아있을 때의 모습. 자신을 보며 웃고 미소 짓던 이들의 모습으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던 이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정말로 단순한 사실인데, 인류가 뒤늦게 깨친 사실들처럼 너무 돌아오느라 알아채지 못한 일들이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메이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어깨를 스쳤던 따스한 손길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손길은 더 이상 자신을 잡지 않고 위안과 격려를 나눠주었다.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눈가에서 눈물을 훔쳤다. 비록 옴닉에게는 기계의 눈으로 물을 흘리는 기능은 없었지만 감정은 알 수 있는 그는 그녀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된 거 같아서 다행이군. 그럼 이제 파티를 즐겨보시겠소? 듣자하니, 저쪽에 루시우가 오늘을 위한 곡을 준비했다는 것 같소.”
그가 이렇게 말하자 이젠 눈물이 기억도 안 난다는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는 설구도 다시 돌아온 그녀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젠야타님은 옴닉인데도 음악을 즐기시나요?”
“물론이오. 삶이 그저 0과 1의 조합이 아니듯 음악도 단순한 리듬, 가락, 화성의 조합이 아니라오.”
젠야타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지 아까 전에 늘어놓은 구슬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맛보기로 잠깐 그 구슬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움직일 수 있나 보여줬는데 어느 춤꾼 못지않은 화려함을 보여주었다.
“좋아요! 이런 자리엔 저도 빠질 수 없죠!”
메이는 신나게 웃으면서 자신이 어릴 적에 보았던 고전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단순히 흥겨운 파티의 날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메이에는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돌아본 날이었다.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오늘. 그녀의 일어남을 기뻐해주는 모든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근심 따윈 날려버릴 흥겨움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