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 무엇이 보이십니까? l
루시우X시메트라
피에르
“무엇이 보이십니까?”
기억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가 나에게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얼룩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게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필요한가요?”
“네? 잘못 들었습니다만?”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일부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은 회사 내에서 사원 복지 차원으로 마련된 상담시간.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과 다른 내 뇌를 그들의 잣대로 평가하고, 그들의 좁은 마음에 담기 힘든 나의 정신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를 비정상이라고 판단할 시간이었다.
“......사티아씨. 상담과 별로 안 친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방침이에요.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별로 안 친하다’라니. 딱 조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만한 단어 선택이로군.
“그럼 시작해보죠. 이게 뭐로 보이시나요?”
그녀는 다시 한 번 검은 얼룩 그림을 보여주었다. 나는 속으로 다르게 생각한 바가 있긴 하지만 그녀에게서 내가 불쾌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나답지 않은 대답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평범한 사람의 대답을.
“......나비요.”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그림을 보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가는 안경을 낀 여자는 안경 너머로 나의 시선을 빤히 쳐다보더니 별 말 없이 사진을 고이 포개 놓았다.
“좋아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이번에는 제가 간단한 단어들을 말 할 텐데 그에 연상되는 단어를 말씀해보세요.”
그녀가 차트를 꺼내고 뭔가를 메모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나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시작하겠습니다. 낮.”
“......태양.”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내 대답이 그녀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밤.”
“달.”
“친구.”
“......사업.”
“집.”
“비슈카르.”
“......”
이번에는 그녀가 망설인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좁은 안경 너머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자기의 일에 집중한다.
그래, 그래야지.
“사람들.”
“구제.”
“평화.”
“질서.”
“행복.”
“......”
“? 사티아씨?”
그녀가 다시 나에게 집중한다.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나의 대답이 필요할 테지만 나는 대답하기 몹시 어려운 질문에 처해있다.
“사티아씨.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데로 말씀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그게 어려운 거라고.
나는 불만을 조용히 삼켰다. 이대로 가면 끝이 나질 않는다. 결국에 내가 긴 침묵 끝에 입에 올린 단어는 평소라면 좋아했을 테지만 요즘 들어 부쩍 딴 생각이 들게 만드는 단어였다.
“성공.”
그날 밤. 내가 향한 곳은 오버워치의 연말 파티 장소였다. 한 해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시간의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멋대로 특별하다고 느낀 시간에 열린 연회의 장. 규모는 꽤 크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본 가장 큰 파티보다는 역시 작은 곳이었다.
안쪽은 봐줄만했지만 역시 찬찬히 보기에는 결함이 많은 곳이다. 가구나 조명 배열이 조잡하고 내부 안내는 가독성이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건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느낌. 역시 이런 곳은 초청받아서 오긴 했지만 오래있기 불편한 곳이다.
‘파치마리 인형은 도대체 누가 놓은 거야?’
“안녕하세요! 사티아씨!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누구 초청받아서 오셨나 봐요?”
내가 의문점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엄청나게 마른 여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머리카락은 염색하지 않았지만 단정하게 입어도 어딘가 영국 히피족이 딱 어울릴 거 같은 스타일의 여성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레나 옥스턴.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삐딱한 머리를 고쳐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어떻게 아나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알아서 스스로 정답을 들려주었다.
“잡지에서 읽었어요. 비슈카르의 최고의 광축업자 시메트라를 이렇게 만나다니 영광이네요! 저도 사티아씨처럼 다른 이름이 있죠. A. K. A 해결사 트레이서!”
“......그거 참 대단하군요.”
그녀는 허리에 손은 얹으며 자신의 명성을 자랑했다. 그가 알던 사람이나 아이라면 이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스펙트럼에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곳은 처음이시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고 곧 있으면 루시우의 특별공연이 시작돼요! 오늘을 위해서 준비한 곡이 있다네요!”
딱히 반갑지도 않은 이름을 들어버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반체제 주의자를 다시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니 눈썹이 삐뚤어져버렸다. 세계적인 DJ이자 자유의 투사인 루시우 코헤이아 도스 산토스. 그가 비슈카르 코퍼레이션 앞에서 시행한 시위 활동은 그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는데 이 영국 여자는 시간 가속할 때 뇌세포는 두고 가속하는지 나에게 그의 공연을 기대하란 말을 하고 있었다.
“......저도 빨리 보고 싶네요.”
‘생선 먹을 때 튀겨서 감자칩이랑만 먹지 말고 가끔은 DHA도 섭취했으면.’
나는 전에 먹어본 영국음식을 떠올리며 그녀를 속으로 비난했다. 영국 음식이 나오면 그 식탁에서 가장 맛있는 게 냅킨이라더니. 우리나라 음식을 멋대로 가져가 개조를 해서 먹는 사람들은 그것 외에 다른 조리 실력을 조금도 개선하지 않았다.
나는 윈스턴 처칠의 굴지의 명언을 속으로 떠올리며 그녀의 안내에 따라 파티장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결 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한 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 여러분! 저 보고 싶었어요?”
갑자기 무대 위를 밝히는 조명이 켜지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선글라스에 민소매 차림인데 자신의 로고가 크게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가 무대에서 등장하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청중들이 그에게 크게 대답한다. 물론 나는 빼고. 내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도 않을 거 같은 일을 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오늘 여기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노래하나 띄우겠습니다! 역시 시작은......! 제 최고의 앨범인 시네스테지아 아우지치바!”
그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턴테이블을 돌리자 째지는 강령한 비트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기계가 만들어낸 현대적인 북소리에 모두 들썩이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파트가 나오길 기다렸다. 나는 이 노래가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현란한 조명이 틀어진 가운데 한 여자애가 풍선껌을 불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루시우의 공연 영상을 찍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트리밍 중인가? BJ일지도 모르겠지만 10대로밖에 안 보이는 그 소녀가 누군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테크노인지 뭔지만 좋아한다니깐......”
다른 한 편으론 구석에서 웬 노인 하나가 맥주만 마셔대고 있었다. 자신의 덩치에 어울리는 커다란 맥주잔. 나는 그가 저 개구리의 음악을 싫어하는 것을 보고 그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을까 싶어 그가 하는 말을 주의깊이 들어봤지만 처음 들어보는 가수의 이름만 언급해대서 실망했다.
나는 다리가 슬슬 아파와 의자를 하나 만들고 그 위에 앉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있는 탓에 DJ의 모습이라곤 겨우 사람들이 올린 팔 틈으로 겨우 보였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나는 내가 만든 의자 위에서 앉아 다리를 꼬았는데 그의 공연이 끝나갈 때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발을 박자에 맞춰 까딱거리고 있었다.
겨우 4분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공연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연회장으로 나왔다. 그의 공연은 첫 노래를 시작으로 여러 음악이 연달아 나오긴 했지만 역시 전부 내가 모르는 것들. 결국 나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연회장의 테이블에 앉아 샴페인을 주문했다.
“여기까지 오다니 좀 의왼데? 네 의자는 멀리서도 눈에 띈다고.”
그는 내가 만든 경화광 의자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건 나에겐 칭찬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의자는 언제나 불만이 느껴지거든요.”
그가 내 옆에 착석한다. 아마 그도 나와 비슷한 입장으로 이곳에 초청이 됐겠지.
“내 공연은 어땠어? 네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
나는 내심 그가 날 알아봤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져있었는 데다가 앉아있었는데 어떻게 나를 본 건지 신기했다.
“좋은 공연이더군요. 손봐야 할 몇 가지 점 빼고요.”
“아~ 넌 언제나 기자회견처럼 대답하는 재주가 있어.”
나는 그의 말에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 말 치고는 나쁘지 않은 통찰력이었다.
“음악은 역시 기계보단 진짜 악기로 연주해야 해요. 오선지도 그릴 줄 모르면서 음악을 논하시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오케스트라도 피아노도, 결국 누군가 처음 만들었을 때만큼은 최신 문물이라고.”
나는 아방가르드를 싫어한다.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조잡한 활동들을. 피타고라스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은 수의 법칙으로 이루어져있고 모든 것은 규칙에 맞게 정련 되어야 아름다운 법이다. 하지만 이 거리의 부랑자에게는 철학이란 과목은 조금 벅찰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비슈카르 사람들은 왜 말이 그리 안 통하는지 원. 저번에 해커 집단 솜브라가 폭로한 비슈카르와 루메리코 간의 비리 뉴스가 나왔어도 해명 한 마디 없잖아?”
“......비슈카르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기업이에요.”
그가 아픈 곳을 건드렸다. 확실히 우리 측 CEO의 비리에 관한 뉴스는 회사의 약점이나 나의 역린이다. 하지만 사내 방침이 정해진 이상 내가 할 말은 언제나 같았다.
“비슈카르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어요. 우리 회사는 리우에 있는 수많은 빈민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요.”
나는 그의 출신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나의 출신도.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나는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둘 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배경을. 나는 내 집에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갔지만 그는 나와 같은 재능이 없었다.
나는 그가 이해해 주길 바랐다. 그도 거지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높은 건물을 우러러보는 기분을 알겠지. 그리고 이젠 내가 그 건물들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루시우의 표정은 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집을 없애버리고 구제를 약속한다고? 그건 어느 독재자씨의 연설이야?”
평소 자주 보이던 웃는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나에겐 물러날 곳이 없다.
“그럼 당신은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빈민가 사이에서 발전도 없이 남들하고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사는 게?”
그의 표정이 보기 드물게 굳어버렸다. 아마 그의 팬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표정들. 그리고 그가 내뱉은 다음과 같은 말은 나의 뒤통수를 강렬히 때리고 지나갔다.
“남들하고 똑같이 사는 것...... 그게 뭐가 나쁜데.”
나는 그의 말을 듣자 바로 숨이 멎어버렸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 단순한 명제에 충격을 느껴버렸다. 뭐가 나쁘냐는 그의 말은 기이하게도 아무런 결함도 보이지 않았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바보라서 어제와 같은 인생을 산다고 생각해? 아니야. 틀렸어 그건. 그들은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변화를 함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너희들은 그 지키고 싶은 것을 없애버리려는 사람들이고.”
“......”
나는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추구했는데 정작 그 좇음의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거리의 부랑자에게...... 인생에 대해서 듣게 될 줄은 몰랐군요.”
‘거리의 부랑자’라는 말에 나쁜 뜻은 없었다. 아니, 나쁜 뜻인 건 맞지만 이전에는 그가 어떤 철학을 가진지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무시했던 나를 자책함을 알려주는 단어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도 내 맘을 알아채고 피식 웃어댔다.
“뭘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단 저쪽의 구루님이 더 잘 알려줄걸?”
그가 가리킨 곳에는 유명한 옴닉 수도승이 공중에 떠있었다. 그런 상태로 누군가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있는 거 같은데 그 앞에는 아까 자신을 트레이서라고 소개한 그녀가 눈을 반짝이면서 그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늦은 거였군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밤이었다. 나는 내 앞으로 나온 샴페인을 마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루시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있지. 오늘 밤 공연은 아직 안 끝났거든? 내가 듣기론 네가 네 전통 춤에 조예가 깊다던데?”
“네? 그야...... 그렇긴 하죠.”
나는 내가 뭔가를 만들 때 쓰는 손동작을 떠올렸다. 확실히 내가 사용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정석적인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내 무대에 경극 같은 게 어울릴 진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같이 가자. 엄청 재밌을 거야!”
그가 나를 강제로 어딘가로 끌고 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내 의사와는 반대로 걷게 되는 상황에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 경극은 중국이라고요! 아니, 잠깐만. 내가 어딜 간다고요??”
그가 나를 데리고 간곳은 일종의 장기자랑 대회.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은 출 수 있는 춤이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어째 어디선가 1주년 기념 감사제라도 열렸는지 그렇게 열리게 된 장기자랑 대회. 크게 ‘영웅들의 댄스 배틀!’이라는 나랑 평생 연이 없을 거 같은 현수막이 붙어있긴 했지만 결국 나는 루시우와 커플로 무대 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거기서 나는 내가 가진 재주를 꺼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가 올림픽 선수 못지않은 리본체조 실력을 보여줬을 땐 청중석에서 어디서 났는지 모를 스케치북으로 크게 ‘10점!!’이라고 적힌 점수판을 등장해서 나도 청중도 폭소하게 되었다.
이곳은 분명 결함이 많고 조잡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보낸 그 날 하루 밤은, 내가 가본 세계 최고의 연회장에서보다 훨씬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