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 로맨틱 데이 l
메르시X겐지
나담
겐지는 연말 파티 초대장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봐, 파트너 구했어?"
"신청은 해봤지."
"누구한테 했는데?"
가까운 곳에 있던 이들이 며칠 뒤 있을 연말 파티와 그의 파트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와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트레이닝 룸의 이런저런 소음들을 흘려보내며, 겐지는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에 수리검을 끼우고 목표를 향해...
"앙겔라 치글러 박사한테."
"!"
수리검을 던지려던 손목이 삐끗했다. 모양 빠지게 표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정말 초보적인 실수였다. 아니, 그보다는.
"치글러 박사?"
그들에 대화에 절로 귀가 트였다. 박사님께, 그래서?
"거절당했어."
겐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했다. 가까스로 냉정을 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를 떴다.
그 또한 초대장을 받았을 때부터 생각해둔 파트너가 있었다. 방금 이름 모를 요원이 거절당한 앙겔라 치글러. 차일피일 신청을 미루다보니 경쟁자가 꼬이기 시작한다.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지만... 슬쩍 달력을 보니 연말 파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파트너를 포기하던가, 아님 오늘에야말로 제 할말을 해야했다.
트레이닝 룸을 나온 겐지는 앙겔라의 연구실로 가는 것이 좋은지, 아님 개인실로 찾아가보는 게 좋은지 고민했다. 현재 시간은 식사 때를 훨씬 지난 후였지만 앙겔라는 업무 때문에 식사를 늦게 하곤 했다. 그렇담 식당 부근을 한번 얼쩡거리는 것이 좋은가. 식후엔 카페를 꼭 들리는 분이니 카페 쪽을...
"겐지?"
"...아, 박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까부터 뒤에서 계속 불렀다구요."
머릿속으로 그리던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거야 시작부터 보스몹을 만난 기분이다. 아직 제대로 해야할 말도 정리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이 기회를 져버릴 순 없었다.
"좋은 저녁이에요. 트레이닝 룸에서 오는 건가요?"
겐지는 당황을 감추려고 노력하면서 대답했다.
"...예. 박사님은 연구실로 가십니까."
"네.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서."
야근을 감내하는 앙겔라의 얼굴이 조금 피곤해보였다. 곧이어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기지 복도엔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야단이었다. 창문에 매달려있는 꼬마전구를 보며 앙겔라가 말했다.
"벌써 연말 분위기가 나네요."
"그렇습니까."
그 찰나 겐지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까 고민했다. 새삼 파트너 신청을 하려니 개인적인 부탁을 해본 적이 없어 너무나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우선, 파티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보고...
"그래서. 언제 말해줄 건가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파트너 신청요."
"예?! 아, 그."
뜻밖의 라이트훅에 겐지는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신청을 하긴 할 계획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그동안 한손엔 초대장을 꼭 쥐고 엄청 할말 있는 표정으로 보는데 모를 리가 있겠어요? 다 티났어요, 겐지. 대체 언제쯤 말해주려나 싶었는데."
"박사님..."
"파트너 신청 포기하는 줄 알았잖아요."
"아닙니다, 그건!"
즉각으로 대답하자 앙겔라가 무엇이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에 전염된듯이 겐지의 입가에도 미소가 덧그려졌다.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설레임. 쿵쿵. 심장이 울리며 제 존재를 알렸다. 겐지는 한손을 가슴에 대고 몸을 살짝 수그렸다.
"제 파트너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박사님."
"흠. 좋아요."
무언가를 뒤집어쓴 듯한 이 기분은 아마 환희일 것이다. 겐지는 앙겔라가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것에 주목했다. 마주치는 시선이 달았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앙겔라가 크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를 못 듣길 바랐다.
"겐지, 저게 뭔지 아나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겨우살이였다. 겐지가 고개를 기울이며 단순히 장식 아닙니까? 하고 묻자 앙겔라가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아래에 서면 키스를 해야한다고.
"연말에 맞는 로맨틱이죠?"
"그렇...군요."
그외에도 이것저것 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장식들이 많았다. 겐지는 차분한 그녀의 설명에 꾸덕꾸덕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꾸민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신경 꽤 썼네요. 앙겔라가 즐거워하며 말했다.
이윽고 연구동에 다다르자 겐지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짧은 대화였지만 즐거웠어요."
"예."
"오늘 파트너 신청도 고맙구요."
"......"
"...겐지?"
앙겔라는 겐지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어깨 너머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소리없이 탄성했다.
앙겔라의 연구실 출입문에 보란듯이 겨우살이가 매달려있었다. 천천히 겐지의 시선이 앙겔라를 향해 내려앉았다.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허락해주신다면, 박사님."
"......"
"앙겔라."
겐지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그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해졌다.
앙겔라는 대답대신 눈을 감았다.
바야흐로 연말에 맞는 로맨틱이었다.